11/09/2026
머무는 책갈피 vol.53
『작고 귀여운 직업』 - 조재성 (몽스북, 2026)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작고 귀여운 직업』이라는 제목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작고 귀엽다’라는 표현으로 직업을 수식하는 것을 상상해 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잔잔하고 자유롭게 문구 작가로 삽니다’라는 부제까지 보고는 이 일이 정말 그러할까 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저자 부부는 다이어리 꾸미기용 스티커부터 메모지, 마스킹테이프, 엽서, 키링까지 문구 제품을 만든다. 문구를 매개로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며 고군분투하는 과정과 창작자이자 운영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작고 귀여운 것을 만드는 일과는 별개로, 먹고 사는 문제는 귀엽지만은 않다. 책에는 제품 개발부터 제작, 발송, 납품, 재고 관리까지 사업의 단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점에서 고른, 얇고 가벼운 스티커 하나가 이런 절차를 거쳐 내 손에 들어온다고 생각하니, 새삼 제품 뒤에 있는 사람이 보였다.
『작고 귀여운 직업』은 자신이 몸담은 업의 본질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한 사람을 여러 방향에서 끌어당기는 일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 역시 창작자로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고민만 하다가 창작하지 못할 바에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한다. 올해 독립 잡지 만들기를 시작했고, 제작과 홍보, 유통을 경험하고 있는 터라 책 속의 이야기에 내 상황을 대입하며 읽었다.
“숫자는 잘만 활용하면 좋은 도구다. 숫자는 도구지, 본질이 아니다. 숫자에 너무 연연하면 창작은 더 이상 창작이 아니게 된다. 창작은 계산이 된다. 일의 재미는 빠른 속도로 0이라는 숫자로 치닫는다. 숫자 활용의 부작용이다.” (177쪽)
판매 금액이나 재고, 마진율 같은 숫자만 들여다보면 재미가 줄어든다는 말에 공감했다. 숫자를 파악하되, 숫자가 내 희망대로 따라주지 않더라도 창작을 계속할 힘을 갖고 싶다.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물을 첨벙이고 흐르게 만들겠다는 각오가 우선이다. 단순한 처방이지만 결국 도전이 답이다. 도전이란 이름엔 다양한 시도를 담을 수 있다.” (203쪽)
저자는 거창하지 않은 작은 시도를 계속한다. 디자인을 조금씩 달리하고 재질도 바꿔본다. ‘물이 흐르게 하라’는 말은 단행본, 잡지, 쪽글, 만화 등 장르를 바꿔가며 시도하다가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는 나에게 하는 조언 같았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어진 자원과 시간 안에서 최선의 결정을 하며 중심을 잡아봐야지.’ 책을 덮으며 이런 말을 나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밍키트 하면 자연경관을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디자인해 스티커로 만든 제품이 떠오른다. 유사 제품이 금방 생기고 유행도 빠르게 지나가는 문구 업계에서 밍키트는 색이 분명한 브랜드로 보였다. 대형서점 스티커 코너에서 수많은 제품 사이로 밍키트 제품을 발견했을 때도 그들만의 목소리와 결이 느껴졌다.
내가 산 책에는 초판 기념 한정 굿즈로 저자가 만든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제목 그대로, 작고 귀여운 것들 뒤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았다.
Written by 머물작가 염주희 Joohee Yum 👀 염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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