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2026
오늘 낮에는 4교시 끝나고 혼자 먼저 하교한 아이 손 잡고 서울대병원에 알레르기 검사하러 갔다. 비염이 심해서 밤마다 코를 심하게 골아서다. 녀석은 불안한지 버스정류장에 서서, 잡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꼭 쥐며, “수술해야 해?”라고 묻는다. “검사해서 코 심하게 고는 게 알레르기 때문이면 수술 안 해도 되고, 그게 아니라 아데노이드가 커서 그런 거면 수술해야 하고.”라고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창경궁 서울대병원까지 버스 세 번 갈아타고 가면서, 촌놈 서울 구경 가는 심경이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버스 타고 서울 한복판에 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랜만에 간 서울에는 외국인들이 많았다. 한 무리의 러시아 사람들이 버스에 줄줄이 타더니 광화문에서 우르르 내리기도 했고, 궁 앞에는 태반이 외국인들이었다. 심지어 서울대병원에 도착해서 공사 중인 건물 아래를 지나는데도 외국인들이 지나갔다.
병원 예약 시간 때문에 학교에서 점심을 못 먹고 온 터라, 도착하자마자 지하 1층 푸드코트로 향했는데, 빵집, 어묵집, 도넛집밖에 없어서,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구운달걀을 샀다. 특별히 먹일 게 없기도 했고, 녀석이 몇 달 전에 삼각김밥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어서 그랬는데, 녀석은 달걀만 두 개 먹더니, 삼각김밥은 한 입씩 먹고는 고개를 젓는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어떻게 되었느냐”는 아내의 문자에, 푸드코트에 먹일 게 없어서 점심 제대로 못 먹였다고 했더니, 안쪽에 돈가스, 우동, 밥 다 있는데, 왜 그랬냐고 타박한다. 집에 돌아와 간장 떡볶이 해주면서 생각해 보니, 아비가 아들에게 병원에서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점심 사주는 건 좀 창피한 일 아닌가, 그래서 옆자리 할아버지가 조금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건가, 싶었다. 그런데 저녁으로 어제 사놓은 미국산 소고기 구워주려고 뜯어보니 비계만 많고 고기 상태가 영 별로이기까지 하다. 빌어먹을.
꾸역꾸역 저녁 해 먹이고 밤에 책방에 나와 앉아 있는데, 술 취한 중년 남자가 들어와서 ‘언젠가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한다. 책방에 와서 노래를 틀어달라니, 참 신선한 경험이다. 또 한 커플이 들어오더니, 남자가 책 있느냐며 제목을 얘기하는데, 다 오래된 옛날 베스트셀러다.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예전 젊었을 때 읽었던 책을 사주려는 모양인가 본데, 당연하게도 코딱지만 한 책방에 그런 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다들 그냥 나갔다. 결과적으로 오늘 매출은 0원.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어떻게 좋은 날만 있겠어.’ 생각하면서, 윤고은 신작 를 손에 들고 읽는데, 200쪽 소설이 정가 17000원이다. 책 정가는 이렇게 뛰었는데, 왜 책방 매출은 갈수록 줄어들까? 요즘은 종이책이 힙하다던데…. 생각하다가도, 하긴 뭐 비싼 것도 아니다. 마트에서 파프리카 두 개에 3800원이고 시금치 한 다발에 5000원이 넘으니…
그러다 갑자기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가 출판사와 함께 사재기한 게 적발됐다는 기사를 읽은 게 생각나서, 어떤 작가인가 검색해 보니 그 작가였다. 근데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그 작가는 우리 책방에도 몇 번 와서 자기 책을 사 간 적이 있는데, 사재기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저 한두 권 사 간 것 뿐이어서, 우리 같은 작은 책방까지 와서 자기 책을 한두 권 사는 건데 그 정도는 그래도 양호한 거 아닌가, 조직적으로 인력 동원해 대단위로 작업하는 출판사도 부지기수인데… 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몇자 끄적이며 발소리가 들려 반가운 마음에 고개 들어보니, 아무도 없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소리였다. 빌어먹을.
오늘 책방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