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5/2026
드림투데이 5월 4일자_책소개
[작은책방 우리책들] 알맹이 없는 삶
_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_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정화열 해제
_ 한길사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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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쨍한 햇볕과 뜨거워지는 공기 속에서 사람이 죽었다. 지난 4월 20일, CU진주물류센터 앞 화물연대본부의 집회가 진행 중이던 현장. 화물차 한 대가 경찰의 허가 하에 출차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노조원 1인이 사망, 2인이 부상을 입었다. 23일, 화물차 운전자가 구속되었고, 화물연대본부는 25일 오후 3시 CU 진주 물류센터 앞에서 ‘열사 정신 계승 및 CU 투쟁 승리 화물연대 총력결의대회’를 개최했다. BGF가 지난 1월부터 시작된 교섭 요구를 무시하고 물량 이관 및 손해배상 청구로 일관하여 갈등이 고조되다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상실에 대한 슬픔이 휩쓸고, 분노가 들어차고, 투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노동절을 맞았다.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중략)
책을 온전히 가득 채우는 아이히만의 범죄 사실, 그리고 그가 그것에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읽다보면 결국 이 악의 평범성이란 것이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는 말의 매끄러운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 ‘평범성’은 영어 ‘Banality’로 번역된다. 이는 단순한 평범한 사람, 소시민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알맹이 없는 평범성이다. 영혼이 없는 존재. 화물차에 사람이 치여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이 궁지에 몰렸는데도 그것이 개인의 탓이라고 여길 수 있는 존재. 악의 평범성은 우리가 모두 악한 자,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알맹이조차 우리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너무나도 쉽게.
대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운전자 개인도 아니고 사장 개인도 아니다. 말단 직원에게는 권한이 없고, 사장 개인이 권한을 잃는다 해서 이 모든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보장이 없다. 책임은 사형이 아니라, 이후의 모든 과정을 몸소 겪기로 한 사람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우리에게 책임을 따지는 과정에 정답이 없음을 깨우친다.
알맹이 없는 삶으로부터 멀어지자. 복수와 정죄, 깔끔한 끝이 아닌 고단하고 불편한 과정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자.
_ 호수(동네책방 ‘숨’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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