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집

바이블집 교회와 기독교출판사&기독교용품제작업체 사이의 '다리 놓는 사람들'

30/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31일

그림자 나라여, 안녕

아슬란이 그들을 보며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림자 나라 식으로 말하자면 죽은 것이다. 학기가 끝나고 휴일이 시작됐다고 할까. 꿈은 끝나고 이제는 아침이 된 거다..."
우리는 이것이 나니아 이야기의 끝이며, 그들 모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보낸 그들의 삶과 나니아에서 겪은 모든 모험은 책으로 치면 표지와 속표지에 불과했습니다. 이제 그들 앞에는 지구상의 어느 누구도 읽어보지 못한 위대한 이야기의 첫 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새로운 장이 그 앞장보다 항상 나을 것입니다.

29/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30일

아버지, 구속자, 내주시하시는 위로자

자아 인식이라는 황금 사과가 거짓 신들 사이에 떨어졌을 때 불화의 열매가 되어 버린 것은, 그들이 서로 그것을 차지하려고 앞다투어 싸운 탓입니다. 그들은 그 거룩한 경기의 첫 번째 규칙, 즉 모든 선수는 공을 잡은 즉시 다른 선수에게 넘겨야 한다는 규칙을 잘 몰랐습니다. 공을 계속 잡고 있다가 걸리면 실책이며,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죽음입니다.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공이 옮겨 다닐 때, 그 위대한 주인이 '말씀'의 나심을 통해 영원토록 자신을 피조물들에게 주시며 '말씀'의 희생을 통해 다시 자신에게로 되돌아가심으로써 유쾌한 잔치 자리를 이끌어 가실 때, 참으로 그 영원한 춤은 '천국을 조화로움으로 나른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알았던 모든 고통과 쾌락들은 그 춤동작의 초보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 춤 자체는 현세의 고난과 결코 비교될 수 없습니다. 피조세계에 속하지 않은 그 리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고통과 쾌락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 춤 안에는 기쁨이 있지만, 기쁨을 위해 그 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춤은 선이나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춤은 사랑 그 자신이며 선 그 자신으로서,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지구가 모든 별과 비교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간과 우리의 관심사들 또한 모든 피조세계와 비교될 수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또 모든 별들이 우주 공간 자체와 비교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피조세계와 모든 보좌와 모든 권세와 능력과 피조된 신들 중 가장 강한 자 또한 자존하시는 '존재'의 심연, 곧 우리에게는 아버지요 구속자요 내주 하시는 위로자가 되시지만 원래 그가 어떤 분이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시는'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인간이나 천사도 말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그 '존재'의 심연과는 비교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실체 없이 파생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시야는 여기서 끝납니다. 그들은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완전한 현실, 그렇게밖에 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란 있을 수 없는 완전한 현실의 견딜 수 없는 빛을 피해 자기 눈을 가릴 것입니다.

28/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9일

방 많은 집

여러분의 개별적 특성 중에 하나님이 모르고 계신 부분은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여러분 또한 모르는 부분 하나 없이 다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자물쇠를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열쇠 자체도 이상해 보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혼에는 하나님의 본체가 지닌 그 무한한 윤곽선의 한 돌출 부분에 들어맞도록 오목하게 패이는 바람에 기이한 모습을 갖게 된 한 형태, 또는 방 많은 집의 한 방문에 꼭 들어맞는 한 열쇠가 있습니다. 구원받는 것은 추상적인 인류가 아니라, 바로 여러분 자신-존 스터브나 재닛 스미스 등의 이름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축복받은 행복한 피조물로서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눈으로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인도를 따를 때, 죄를 제외한 여러분의 전 존재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상태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브로켄의 유령이 ‘모든 이에게 각자의 첫사랑으로 보인’ 것은 일종의 속임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영혼에게 첫사랑으로 보이는 것은, 진짜 그가 각 사람의 첫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있는 나의 자리는 나 한 사람, 오직 나 한 사람에게 맞추어 만든 자리처럼 보일 것입니다. 바로 내가 그 자리에 맞추어-장갑이 손에 맞추어 한 땀 한 땀 만들어지듯이-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27/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8일

우리 각자의 영혼에 쓰여진 비밀스러운 서명

저도 우리가 천국을 갈망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자주 떠오른 생각은, 과연 우리가 마음속으로 천국 외에 다른 것을 갈망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갈망해 오던 그 무언가, 다른 갈망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그 저변에서, 목소리 큰 열정들 사이사이 잠깐씩 찾아오던 침묵의 순간마다, 아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밤낮없이 해를 거듭하며 찾고 지켜보고 귀 기울이던 그 무언가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는(기껏해야 희미하고 불확실하게 알고 있는 갓이지만) 또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평생에 걸친 우정의 관계들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그 무언가를 붙잡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깊이 사로잡았던 것들은 모두 그것의 암시-보일 듯 말 듯한 영상, 귀에 잡히자마자 사라지는 방향-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정말 모습을 드러낸다면-반향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음향으로 증폭된다면-여러분은 그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도 의심 없이 “나는 바로 이것을 위해 지음받았던 거야”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영혼에 쓰여진 비밀스러운 서명이자 전달할 길 없고 달랠 길 없는 소원이며, 아내를 만나고 친구을 사귀고 직업을 선택하기 전부터 갈망했던 것이자 아내나 친구나 일을 기억하니 못하게 된 죽음의 자리에서조차 여전히 갈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이것도 존재합니다. 이것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26/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7일

아들로 섬길 것인가, 도구로서 섬길 것인가

하나님이 순수한 악으로부터 복합적인 선을 만들어 내실 수 있다고해서 순수한 악을 저지른 사람들의 책임이 면제되는-하나님의 자비로 구원 받을 수는 있어도-것은 아닙니다. 이런 구분은 아주 중요합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없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화가 임합니다. 죄는 확실히 은혜를 더하게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계속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의 죽음 자체는 역사적 사건 중 최악의 사건인 동시에 최선의 사건이지만, 유다의 역할은 여전히 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다른 이들이 겪는 고난의 문제에 먼저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자비로운 사람이 이웃의 유익을 위해 ‘순수한 선’과 의식적으로 협력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다고 합시다. 반대로 어떤 잔인한 사람은 이웃을 학대하면서 순수한 악을 행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의 동의 없이,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 악으로 복합적인 선을 만들어 내셨다고 합시다.
이때 첫 번째 사람은 아들로서 하나님을 섬긴 것이고, 두 번째 사람은 도구로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하든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처럼 섬기느냐 요한처럼 섬기느냐가 문제입니다.

25/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6일

예수, 성육신 하나님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셨다면 강철 같은 담력을 가진 사람,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극기의 화신을 통해 성육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겸손하신 그분은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분 안에 성육하기로 선택하셨고,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으며,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을 피처럼 흘리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람이 선하거나 악한 것은 오로지 본인의 ‘의지’와 관련된 일이고 ‘느낌’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큰 교훈을 배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중 가장 약한 자들이 직면하는 상황을 모두 겪으셨다는 것과 인간성의 강점뿐 아니라 죄를 제외한 모든 약점까지도 공유하셨다는 것을 앎으로써 얻게 되는 너무나 큰 위로도 놓쳐버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천성적으로 엄청난 용기를 지닌 사람 안에 성육하셨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이 아예 성육하지 않으신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존재로 느꼈을 것입니다.

25/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5일

성육신의 의미

범신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만유이시네. 그러나 창조는 하나님이 만유가 되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보여 주네. 그분은 '만유 안에 만유가'되려 하시네.
이 진리를 표현할 때 인간의 창조와 하나님의 성육신의 구별이 모호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네.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창조 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창안하-시고 '말씀으로'-주입하심으로- 그를 자연의 영역 속에 두셨네.
성자 하나님은 성육신을 통해 인간 예수의 몸과 영혼을 취하시고 자연환경 전체와 모든 피조물의 곤경을 당신의 존재 속에 담아 내셨네. 그러므로 "그가 하늘에서 내려와"는 '하늘이 땅을 끌어올려 그 안으로 담아내어'라고 고쳐서 표현할 수도 있을 듯하네. 하나님은 국지성, 한계, 잠, 땀, 피곤한 발, 좌절, 고통, 의심과 죽음을 직접 체험하는 자로서, 온 세상 이전부터 아신다는 뜻일세.
순전한 빛이 땅을 거니셨네. 어둠은 신성의 심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네. 자존하는 빛 가운데가 아니면 어둠이 어디에 잠길 수 있겠나?

23/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4일

신화가 사실이 되었다

모든 것의 본질적인 의미가 신화의 '하늘'에서 역사의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께서 자기 영광을 비우고 인간이 되신 것처럼, 신화도 부분적으로 영광을 비웠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학이 탁월한 시로 경쟁 상대를 압도하기는 커녕, 형식뿐 아니라 실제 내용에 있어서도 시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입니다. 신약성경이 구약성경보다 시적이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말씀을 들을 때 먼저 놀라운 교리적 교훈을 배운 후 실제적인 적용으로 넘어가면 다소 작다고 할까, 심하게 말하면 평범한 내용이라고 느낀 적이 많지 않으십니까? 실제로도 그렇고, 그렇게 되어야 마땅합니다. 신화가 사실로, 하나님이 인간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있되 이미지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어서 꿈과 상징과 의식으로 극화된 시에서만 잠깐 엿볼 수 있던 그 무엇이, 작고 견고하게 되어 갈릴리 호수에 떠 있는 배 위에서 잠잘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22/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3일

이교적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기독교 신학은 그리스도인들과 (그 이전에는)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조명이 주어졌다고 말할 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얼마간의 신적 조명이 주어졌다고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모든 사람에게 비친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대한 이교도 스승들과 신화 창조자들의 상상력을 빌어 우리가 믿는 바 우주 전체 이야기의 줄거리에 해당하는 테마를 일부 엿보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의 테마입니다. 그리고 이교적 그리스도(발데르, 오시리스 등)와 그리스도의 차이점은 딱 우리가 예상할 만한 정도 입니다. 이교의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내용인데, 그 일은 매년 벌어지거나 언제 어디서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기도 합니다.
기독교의 이야기는 역사적 인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름이 알려진 로마의 총독 치하에서 처형을 당했고, 그 시기를 상당히 정확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그가 세운 종교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과 참의 차이점이 아닙니다. 한쪽에는 실제 사건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 사건에 대한 희미한 꿈 내지 예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흐릿하게 보이던 사물이 서서히 초점이 잡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에 그것은 신화와 의식의 구름으로 광범위하고 모호하게 하늘에 떠 있습니다. 그러다 그것이 점점 압축되고, 단단해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작아져서 1세기 팔레스타인 지방의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21/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2일

성육신은 신화를 초월한다

신화가 사고를 초월하듯, 성육신은 신화를 초월합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사실이기도 한 신화입니다. 죽는 신을 다룬 옛 신화가 여전히 신화인 채로 전설과 상상의 하늘에서 역사의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 일은 구체적인 시간, 구체적인 장소에서 벌어지고, 정의할 수 있는 역사적 결과들이 그 뒤를 따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죽는지 아무도 모르는 발데르나 오시리스 같은 신을 지나 (모두 순서에 따라)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역사적 인물에게 이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은 동정녀가 잉태했을 때 이 위대한 신화가 사실이 되었음을 몰랐던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사실이 된 이 이야기가 원래 신화였다는 점, 그것이 사실의 세계에 들어오면서 신화의 온갖 특성들을 함께 가져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신 이상이신 분이며, 그리스도는 발데르를 넘어서는 분입니다. 그 이하의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기독교 신학에 깃들어 있는 신화적 광채를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종교들과의 '유사성'과 '이교 그리스도들'에 긴장해선 안 됩니다. 그런 요소들은 그 자리에 있어야 마땅합니다. 만약 없다면 그게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20/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1일

주께서 오심

사실적 면에서, 하나님이 오랜 준비 과정의 끝에 그 절정으로서 사람으로 성육신하셨듯이, 문서적 면에서도 그렇게, 진리는 처음에 신화적인 형태로 나타났다가 오랜 응축 과정, 집중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역사로서 성육신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견해는 신적 진리의 광선이 인간의 상상력에 떨어진 것으로 봅니다. 다른 민족들처럼, 히브리 민족에게도 신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된 백성이었기에, 그들의 신화도 선택된 신화였습니다. 즉 인류 역사 가장 초기의 신성한 진리들을 전해 주는 매개물이 되도록, 진리가 마침내 완전한 역사적 진리가 되는 신약성경에서 귀결점을 맞는 그 과정의 첫번째 계단이 되도록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신화였습니다.

19/12/2021

기쁨의 하루 - C.S.루이스, 홍성사
12월 20일

아무것도 남겨 두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자아를 포기하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을 '무작정'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그도께서는 진정한 인격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에게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인격에 계속 신경 쓰는 한 여러분은 결코 그에게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아를 통째로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새 자아(그리스도의 것이면서 동시에 여러분의 것인 자아, 그의 것이 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러분의 것이 된 자아)는 그 자체를 추구하는 한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자아는 그리스도를 찾을 때에만 얻을 수 있습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립니까?
아시겠지만 이것은 많은 일상사에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자기가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있는지 신경 쓰는 동안에는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습니다. 문학과 예술에서도 독창성에 신경 쓰는 사람은 독창적이 되지 못하지요. 반면에 단순히 진실만을 말하려고 노력하다 보면(전에 이런 말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에 전혀 개의치 않은 채), 십중팔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독창적이 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삶의 꼭대기부터 밑바닥까지 관통하고 있는 원리입니다. 자신을 포기하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매일의 야망과 이루고 싶은 바람들의 죽음을,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몸의 죽음을 받아들이십시오. 온몸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남겨 두지 마십시오. 주지 않은 것은 진정한 여러분의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 죽지 않은 것은 죽음을 떨치고 일어서지 못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찾으면 결국 미움과 외로움과 절망과 분노와 파멸과 쇠퇴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를 만날 것이며,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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