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0/2023
#쪽도서 , 매튜 바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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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들이 본질에서 아버지와 하나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한 본질, 세 위격’(one essence, three persons)은 그 자체로 모토가 아니었다. 마치 이 주문을 내뱉기만 하면 니케아 지지자가 되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기억하라. 구분 자체가 문맥에 들어 있었다. 영원한 출생(eternal generation)이다. 아들이 본질에서 아버지와 하나인 것은 아들이 영원히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나셨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영원한 출생은 아들을 구분할 뿐 아니라 아들의 동등성을 확보한다.
아타나시우스가 말했듯이, “아들은 늘 아버지의 본질의 적자이시다.” 이것이 성경적 은유 자체의 기본이다. “사람은 조언으로 집을 짓지만 본성(본질)로 아들을 낳는다. …이 아들은 아버지의 본질의 적자이며 아버지 밖에 있지 않다.” 카파도키아 신학자들도 똑같이 말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는 독생하신 아들이 아버지 안에 있으며, 따라서 그분의 본성(본질)으로부터 나오셨고, 이런 이유로 아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결코 없었다고 했다. 서방 사람들이 동의했는가? 동의했다. 어쨌든 이들은 동일한 신경을 말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한 “출생에서, 시간 속의 그 어떤 시작도 없이, 본성의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존재를 부여하신다.”라고 썼다. 영원한 출생뿐 아니라 영원한 출송(eternal spiration)도 마찬가지다. “두 분(아버지와 아들) 모두로부터의 발출이 성령께 존재를 부여하셨고, 이 일은 시간의 그 어떤 시작도 없고 본성의 그 어떤 변화도 없이 이루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무수한 사람들이 똑같이 말했다.
영원한 출생을 통해, 하나인 본질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 전달된다. 아버지가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신적 본질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 본질을 다른 위격에게서 받지 않으셨고 나지 않으셨다.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출생이 아들을 반드시 종속시킨다고 항변했으나(지금도 비평학자들이 제기하는 혐의다), 이 교부들은 이에 답해 자신들 이전에 니케아 신경이 말한 것을 제시했다. 아버지의 우시아(본질)로부터의 출생하심은 영원하며 불변한다. 이것은 인간의 출생과 다르다. 핵심은 이것이다. 본질과 위격을 구분하지만 이들 둘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믿을 만한 표현 중 하나를 사용하여, 하나이며 단순한 본질이 실재의 세 양태를 갖는다거나 한 본질이 세 위격으로 실재한다고 말한다면 본질과 위격을 하나로 유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더없이 괴이해져 이 표현을 뒤섞기 시작하면, 각 위격이 실재하는 관계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겠다. 왜 이런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가? 하나님이 단순한 삼위일체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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